HMR 바람, 식품 라인의 변화와 투자를 이끈다 ①
HMR 바람, 식품 라인의 변화와 투자를 이끈다 ①
  • 오현식 기자
  • 승인 2017.01.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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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자동화를 위한 투자가 이어진다 ⑤ 식품 산업

 
국내 식품 산업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내수 시장의 저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비심리 역시 위축돼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모멘텀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인근에 둔 지역적 특색으로 수출 증가 등이 기대되지만, 큰 폭의 실적 향상을 이끌어 낼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그렇지만 투자마저 흐림은 아니다. 시장의 요구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내기 위한 투자는 멈출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2017년 국내 음식료 기업의 영업 환경은 2016년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시장 지형도의 변화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된다.

1인 가구 증가, HMR이 뜬다
최근 음식료 산업에서 주목할 트렌드는 HMR(Home Meal Replacement)이다. 가정식 대체식품으로도 불리는 HMR은 음식 재료들를 손질한 후 1차 조리된 상태로 가공·포장해 판매되는 식품이다. 즉 음식 재료들을 손질한 후 일정 정도 조리가 된 상태에서 가공·포장해 데우거나 끓이는 등의 단순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음식이 완성되도록 함으로써 가정에서 쉽게 맛있는 식사를 즐기도록 한다.

HMR의 가장 큰 이점은 힘들고 어려웠던 주방에서의 작업을 크게 줄일 수 있게 하는 점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식재료 구입→식재료 손질→조리→섭취→정리>라는 일련의 조리 과정에서 식재료 구입과 손질 단계를 생략하면서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일종의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기존 냉장·냉동 식품에 비해 신선도가 높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에는 밖에서 사먹거나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맛과 신선도를 자랑하며, 종류도 다양해 갈비탕·육개장 등의 한식은 물론 스파게티·라자냐 등 양식과 짬뽕과 같은 중식, 별도의 드레싱을 포함한 샐러드도 HMR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간편할 뿐 아니라 일반적인 인스턴트 식품에 비해 건강에 대한 우려도 적은 HMR은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평균 소득의 증가와 함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로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주방에서의 노력을 줄이면서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HMR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혼술·혼밥 열풍이 보여주듯 1인 가구의 증가도 HMR 시장의 성장을 더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업계에서는 HMR 시장이 향후 5년간 연평균 30%의 고속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전체 식품 시장에서 13.1%를 차지할 정도로 HMR은 이미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체 시장 내 HMR이 차지하는 비중이 1%대에 불과해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HMR이 본격 성장한 시기는 인당 GDP가 3만달러에 육박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던 1990년대 중반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처한 작금의 상황과 유사하다. 따라서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 증가라는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국내 HMR 시장 또한 본격적인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다. 2016년 국내 HMR 시장은 전년대비 33% 성장해 2조원대에 진입했다고 추정되며, 2017년 이후 28% 성장해 2017년에는 7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시장 … 새로운 투자 창출
식품 회사에게 있어 HMR의 대두는 한층 반가운 현상이다. 기존 시장 잠식보다 외식이라는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는 분야를 대체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발생시키는 까닭이다. 기존 환경에서 외식 산업에서 식품회사의 기회는 많지 않은데, HMR은 저가 음식점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 정체기에 접어든 산업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일반적으로 음식점의 경우에도 식품회사로부터 장류·조미료·육가공품 등 기초 재료를 공급받아 수요를 창출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 식당 매출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HMR은 야채·농산물·곡류 등 원물을 포함한 모든 재료를 식품회사가 담당해 매출로 연결시킬 수 있다. 따라서 외식 시장이 HMR로 대체될수록 식품 기업은 더 높은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HMR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은 뜨겁다. 국내 음식료 시장에서는 특히 선두 업체 몇 곳이 시장을 과점하는 경향이 짙기에 선점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선점 경쟁은 생산 설비 기업과 자동화 기업에게도 기회다. HMR이라는 새로운 식품 분야의 대두는 설비 구축으로 이어져 생산 설비 기업과 자동화 기업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신세계푸드시스템, 2016년 CJ제일제당과 롯데푸드가 HMR 전용 공장을 증설하거나 신규 투자를 실시했으며, 하림 등 중견 음식료업체들도 HMR 설비 투자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립식품이 ‘종합 식재료 가공센터’를 설립해 HMR 진출을 선언하고, 동원이 서울 영등포구 가산동에 전용 공장 설립에 착수하는 것은 HMR에 대한 잇단 투자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신세계푸드의 경우, 일찍부터 HMR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면서 공격적인 접근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HMR을 주력으로 하는 제2음성공장을 완공하는 등 발빠르게 HMR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제2음성공장은 약 800억원 가량의 제품 생산이 가능한 대형 HMR 생산 기지다.

이마트 PB 제조사였던 세린식품도 인수한 신세계푸드는 2016년 R&D센서 개편을 통해 HMR 개발팀을 신설, 2016년 상반기에만 매출의 0.5%인 23억4900만원을 연구개발투자에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전개하는 모습이다. 이마트 ‘피코크’를 통해 HMR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이러한 공격적 투자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HMR 공략의 연장선상에서 신세계푸드는 기존 외식 브랜드인 ‘올반’을 식품 통합 브랜드로 확대해 2016년 9월 공식 런칭했다. 음료·스낵·식품 편집숍 등 7개 부문으로 구분되는 올반에서 가장 기대를 받는 분야는 역시 HMR로, 신세계푸드는 2017년 100여종의 올반 키친 HMR 신상품을 출시해 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즉석밥 ‘햇반’이라는 성공 사례를 보유한 CJ제일제당도 HMR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농심 즉석밥 설비 인수로 연간 25%의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진천공장의 전용라인을 확대하는 등 투자 강화에 나선 것이다. HMR에 대한 CJ제일제당의 의지는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HMR 상품 출시에서도 보여진다. CJ제일제당은 2016년 6월 ‘비비고 사골곰탕’을 비롯해 육개장·된장찌개·김치지개 등을 선보이면서 HMR 시장으로 비비고 브랜드를 확장했다.

실제로 2016년 3분기 CJ제일제당의 식품분야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8% 성장하는 호조를 보였는데, 대표 제품인 햇반 컵반에 더해 비비고 국·탕·찌개, 고메 프리미엄 냉동제품 등 HMR 제품이 매출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부대찌개’에 이어 ‘비비고 새우볶음밥’과 ‘비비고 닭가슴살볶음밥’ 등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HMR 시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2017년에도 HMR에 대한 투자 확대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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