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다 Vs. 오른다" … 반도체 고점 논란
"내린다 Vs. 오른다" … 반도체 고점 논란
  • 오현식 기자
  • 승인 2018.09.1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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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말 국내 증시가 휘청였다. 진앙지는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보고서이다.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호황의 끝’을 경고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일순 출렁거린 것.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 분야로, 반도체 시장의 찬바람은 관련 협력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목된다. 

우리나라 경제를 굳건하게 지탱한 핵심 산업이다. 조선, 철강 등의 시황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지난 5년간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리우는 역사적 호황기를 거친 반도체 산업은 승승장구, 우리나라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높였다. 국내 30대 기업의 2018년 상반기 영업이익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논란을 일으킨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요약하면, 역사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엔 항상 주기가 있었고, 2014년부터 5년간 이어진 반도체 업계의 슈퍼 호황이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 골드만삭스도 동조하면서 고점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주장의 배경은 낸드 플래시의 가격하락이다. 낸드 플래시의 가격 하락은 공급과잉을 의미하며, D램에서도 이러한 공급과잉에 의한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 실제로 DRAM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보합세를 유지했던 범용 낸드플래시의 고정거래가격은 5.89%(128GB MLC 기준) 하락했다.

정말 고점일까?
그렇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은 물론 맥쿼리, 노무라 등도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슈퍼사이클이 아직 끝나자 않았다’는 이 주장의 근거는 탄탄한 수요이다. 스마트폰의 확산이 뒷받침하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이제 클라우드, 인공지능, 빅데이터, 인메모리 컴퓨팅 등의 이슈로 인해 서버용 DRAM이 대규모 수요창출의 버팀목으로 역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슈는 서버 DRAM의 견고한 메모리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기술적 측면에서도 과거와 같은 공급 과잉이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집적도가 매우 높아진 오늘날 공급을 폭발적으로 늘리기에는 기술적 장벽이 분명히 존재한다. 고점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공급과잉을 우려하지만, 실제로 반도체 비트그로스는 시장의 기대만큼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시장 상황도 다르다. 과거 공급과잉이 곧 메모리 반도체 기업간의 치킨게임으로 이어지던 시대에 메모리의 주 B2B 중심으로 유통 구조가 전환된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IT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1년 이상 물량 계약을 맺고 있어 충분한 수요 예측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DRAM 현물 가격이 소폭 하락했지만, 계약에 따라 고정 가격으로 진행되는 메모리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시장 구조의 재편도 지나친 공급 과잉이 벌어지기는 힘든 상황이다. 2009년 독일의 키몬다가 쓰러지고, 2012년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엘피다를 인수한 후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사가 주도하는 시장이 됐다. 이는 과거와 같은 치킨게임이 벌어지기 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증산을 결정할 수 있는 여유가 공급사에게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수많은 기업이 난립한 경쟁 체제에서 3사 과점으로의 변화, 여기에 견고한 수요가 뒷받침된 2014년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공급자 중심의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거와 같은 공급과잉이 벌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 World Semiconductor Trade Statistics는 최근 발간한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세계 반도체시장의 매출을 지난해보다 15.7% 증가한 4771억 달러로 예측하면서 2019년에는 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7년의 기록적인 성장률(21%)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견고한 수요가 지속된다는 예측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주의보’
고점 논란의 결론은 아직은 알기 어렵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고, 주장의 근거도 뚜렷하다. 서버 등 관련 시장의 움직임이 누구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할 것이다.

하지만 고점 논란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이다. 중국 정부는 200조원 규모 ‘국가반도체산업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등 반도체 기업 육성에 한창이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기술격차가 아직은 커 당장의 위협은 아니지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위협 요소임은 분명하다. 중국 반도체 굴기는 견고한 3사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게는 기회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반도체 제조 장비 뿐 아니라 클린룸 장비, 제조한 반도체의 품질 확인을 위한 테스트 장비 등 다양한 설비가 요구된다. 반도체 굴기를 위해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의 장비 주문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모는 1조3000억원을 넘어서 최근 5년간 최대의 반기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45%라는 비약적인 증가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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